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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_ 우지현

by lucy831 202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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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를 위한 그림 속 여러 가지 방

 

작가의 말

화가들에게 방은 다양한 의미입니다. 그들에게 방은 유일한 도피처였고, 내밀한 은신처였으며, 이상적인 휴식처였습니다.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창조의 무대였고, 영광으로 지은 거대한 방주였으며, 인생 전부를 담은 삶의 흔적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비단 화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방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깊은 밤 홀로 숨죽여 울던 소리, 조용히 라디오를 켜고 따뜻한 음성에 귀 기울이던 추억, 푹신한 침대에 누워 마음껏 뒹굴던 나른한 주말 오후, 숱한 걱정에 뒤척이며 잠 못 이루던 밤, 수화기를 든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와 수다 떨던 시간, 밤새 아파 뒤척이던 어느 늦은 겨울, 지인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하루 그리고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수 없이 힘들었던 지난 날. 방에는 무수한 기억의 편린들이 함초롬히 젖어 있습니다. 방에는 한 인간의 생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경험하고 기억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간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방입니다. 이 책에는 침실, 욕실, 부엌, 거실, 서재, 식당, 화실, 다락방, 발코니, 자동차와 같은 사적인 범주의 공간부터 카페, 지하철, 성당, 교실, 세탁소, 시장, 온실, 백화점, 호텔방, 배, 미술관 등 공적인 영역의 공간까지 다양한 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담겨 있습니다. 방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저마다의 방에서 자유롭게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방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통해 시간을 구체화하고 공간을 재해석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공통된 인간 삶의 공간을 통해 인생을 반추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엿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허버트 마담, '어느 아침 시간', 1936

 

별일 없이 산다는 것

이상한 하루였습니다. 새벽 늦게까지 잠을 설치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지인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었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전화로 조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차에, 이번에는 친구가 과로로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길, 눈앞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도로 위의 유리 파편들, 아스팔트 노면의 바퀴 자국,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대체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요. 할머니 말씀이 맞았습니다. 세상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다고. 별일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실감했던 날입니다. 조금 이상해 보일지 모르나 나는 가끔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열넷인가 열다섯일 때, 친한 친구가 죽었습니다. 교통사고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겪은 사건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전날 점심시간 때 그 친구와 도시락을 먹다가 투덕거리며 다퉜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녀의 책상에는 하얀 국화꽃이 쌓이기 시작했고, 교실은 울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고, 현실임을 깨달았을 땐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슬프게도 이제는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흔적은 학급 문집에도, 졸업앨범에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 중 일부에게만 아픈 상처로, 마음의 빚으로,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나 역시 이제는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름조차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아무거도 아니었던 아주 사소한 것들이 문득문득 생각납니다. 시험 기간에 노래방에서 그녀와 신나게 노래 부르며 마셨던 차가운 음료수의 목 넘김이나, 비 오는 날 그녀가 신고 있던 땡땡이 양말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건 알지만, 그녀에게 딱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오래전부터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점심시간에 도시락 반찬 뺏어 먹어서 미안하다고. 어쩌면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누구에게도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것. 애당초 인간에게 선택권이 없는 것. 그리고 언젠가 마침내 사라지는 것. 인생에는 되감기도, 일시 정지도 없습니다.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습니다. 어느 때는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하고 이끌고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제어하고 움직이고 소유하는 듯합니다. 나는 이제야 사람이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사람을 선택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허버트 바담(Herbert Badham)도 이런 마음에서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호주의 사실주의 화가 허버트 바담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 식사 장면을 담아 '어느 아침 시간'을 그렸습니다. 담담하게 관조하듯 일상을 묘사하는 그림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화가의 아내로, 눈부신 햇살 속에서 싱그러운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청량한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식탁에 깔려 있고, 그 위에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습니다. 여자가 입고 있는 옷과 앉아 있는 의자 역시 파란색 스트라이프 무늬로, 산뜻하고 시원한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화가는 일부러 보여주기라도 하듯 신문을 곱게 접고 방향을 틀어 베니토 무솔리니의 아비시니아 침공을 발표하는 헤드라인을 적어놓았습니다. 실제 이 그림은 1936년에 그린 것으로, 파시즘적 독재자인 무솔리니가 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략하고 1936년부터 에스파냐 내란 간섭으로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구체화하던 시기와 겹칩니다. 바담은 평범한 일상과 정치적 사건을 대조시킴으로써 평화의 가운데 잠재되어 있는 불안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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