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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지_ 김혜령

by lucy831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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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찾는 다정한 행복

 

기쁨의 감각을 천천히 회복하는 다정한 주문

마음이 아주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고 아무렇지 않은 듯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 속은 늘 암흑이고 매일같이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위로되지 않았고, 나조차도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괴롭고 괴롭기만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 내일이 온다는 사실에 절망해 밤에는 잠을 들 수가 없었고, 겨우 든 잠에서 깰 무렵이면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매일 아침 무너져 내렸습니다. 원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인데, 그 때는 집에 있을 수조차 없어 퇴근하고도 긴 시간을 방황 했습니다. 산책이라는 명목으로 큰 길을 따라 정처없이 걷기도 하고 가로등만 간신히 비추는 깜깜한 골목길에 무작정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사람들의 북적임이 그리워 시끄러운 펍에 들어가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엔 서점에 들렀습니다. 그 때는 생산적인 행위에 집중하는 것도 어려웠기에 책을 읽는다는 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단순히, 근처에 서점이 있으니까 들어간 것 뿐이었습니다. 생기 없는 눈으로 책들이 빼곡한 책장을 훑다가 문득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지' 라니. 참으로 단순하고 자신감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복이라는 게 별 게 아니야' 라는 말처럼 들려 따뜻했습니다. 홀린 듯 뽑아든 그 책을 사서 집에 와서 읽는 동안, 나는 슬퍼졌습니다. 작가가 느낀 사소한 행복들은 분명 예전의 나도 느꼈던 것들인데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지치고 힘들기만 한건지. 책을 읽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확히는, 내 마음이 괜찮아지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어떤 깨달음을 얻어 극복해낸 것은 아닙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어쨌거나 나는 살아가고 있었으니 괜찮아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속에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조금의 위로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도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의 마음 속에, 아주 조금의 온기라도 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책의 몇 구절을 소개해 봅니다.

 

때로 기억하고, 더러 잊으라 (p. 23)

'즐거운 기억은 언제고 있게 되는, 있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고통들을 잘 견디게 해주는 면역력. 즐겁고 신날 때 충만하고 행복할 때 그 순간을 오롯이 경험하는 것이 첫 번째 지혜이겠고, 힘들고 침울하고 허약하게 느껴질 때 잘 저장해놓았던 즐거운 기억을 꺼내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두 번째 지혜이겠다.' 다행히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전의 경험을 상기할 때 작동하는 두뇌 메커니즘은 현재 시점에서 경험할 때와 거의 흡사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과거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마음과 바로 지금 실제로 웃을 때의 마음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뇌의 복잡한 처리 방식을 다 이해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기억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기록한다. 사진을 찍고 글로 남겨두거나 SNS를 활용한다. 누군가에게 되풀이하여 말한다. 그러면서 기억은 더욱 선명해져, 권태롭거나 지치는 날에 다시금 떠올려보게 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기억은 많을수록 좋다. 왜곡되고 미화되더라도 괜찮다. 진실 여부보다 자신이 그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해냈는지가 주목할 대상이다. 그 기억이 아프다는 것은 치유가 필요하다는 적신호이다. 반대로 기쁘다면,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영양제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나의 기억이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로 자아가 기억의 총체라면, 나의 기쁨과 슬픔도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가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언제라도 도망칠, 나만의 장소 (p. 204)

다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사람은 공간으로부터 이런저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젊은이들이 많은 대학가에 가면 괜히 기 분이 들뜨고, 조용한 숲을 찾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집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갑고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또한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공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저서 <행복의 건축>에서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야말로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곳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일 테다. 우리는 가끔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장소에 대한 동경만은 아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갈망하고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 곳으로 훌쩍 떠날 수만 있다면 완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은 아닐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신만의 공간을 찾으려는 욕망과 다르지 않다. 이는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만큼이나 타인의 시선에 결박되지 않는 완전한 독립, 완전한 고독을 바라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공간의 완성은 또한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이 육중하게 느껴질수록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어도 되는 곳으로, 아니 오로지 자신일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나의 쓸모가 전혀 없는 곳, 나를 규정할 수 없는 어딘가에서 잠깐이라도 머물며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몸과 마음에 딱 들어맞게 공간의 변화시켜가는 자연스러운 행위, 그리고 자신에게 평안을 주는 그 곳에서 이따금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 그것을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디에서 가장 행복한가. 어떤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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