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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플로리스트 (The Florist in London)_ 조은영

by lucy831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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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rist in London

 

책 속 한 구절, 한 단락

'플로리스트는 꽃만 알아서 되는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흐름을 읽고, 그것을 발전시켜 특정 공간에 스타일링을 하는 사람이다.' 프롤로그에 적힌 작가의 말입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도 졸업 후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신에게 맞는 다른 일이 있을 거라 믿으며 특수분장 메이크업 아티스트, 푸드 스타일리스트,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의 무대 디자이너,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등 작가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대부분 창의력을 요구하는 분야였습니다. 그 중 푸드 스타일리스트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준비하던 과정에서 꽃을 배우게 된 작가는, 꽃을 배우면서 정말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무턱대고 플로리스트의 길로 들어선 작가는 영국으로 건너갔고, 10 여 년이라는 긴 경험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녀가 꽃을 만질 때마다 항상 건다는 주문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주문일 것 같습니다.

'조조, 이건 단지 꽃일 뿐이야. 이 꽃이 시들거나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내 인생이 어떻게 되지는 않아. 그러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자!'

 

고여있는 물처럼 살 순 없어

내가 받았던 런던의 첫인상은 도시 곳곳의 공원이 주는 여유와 청량감이었습니다. 이 도시는 왠지 나에게 무한한 자유를 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런던의 바쁘지만 여유 있어 보이는, 초록이 넘실대는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끽하며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확실한 꿈이 생기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는데 정작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가장 큰 관문은 바로 부모님이었습니다. 적당한 나이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랐던 부모님에게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딸이 좋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난 누구보다 절실했고 내 인생을 이렇게 흘러가게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평생 하고 싶은 일, 그래서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움직여야 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찾았는데,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머리에, 가슴에 가득 차 있던 나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이런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꽃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힘든 영국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출근 날

워크 익스피리언스 (Work Experience, 일종의 인턴십)를 구하기 위해 여러 숍을 돌아다니면서 거절을 당하다 보니 이제는 나를 대하는 사람의 표정만 봐도 거절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모이세 스티븐스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으로 왕실에서 주는 두 개의 왕실보증서를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단순한 꽃집의 개념을 넘어서는 회사인 것입니다. 내가 만약 이 회사의 가치를 알고 그곳에서 일을 하려고 애썼다면 기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드디어 첫 출근하는 날, 나는 떨리는 마음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숍 근처에서 서성이다 8시 반이 되어서야 떨리는 마음으로 숍에 들어갔습니다.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에 애써 당당한 척, 밝은 척하며 "Good morning, My name is JOJO" 라고 인사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루이스라는 남자가 나에게 가방이랑 옷을 내려놓고 꽃다발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네가 여기 있는 애들보다 잘 하네."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퉁명스럽지만 진심인 것 같은 칭찬에 영양제를 한 100알쯤 먹은 것 같은 힘과 용기가 났습니다. 그의 결정적인 그 한 마디는 조조를 춤추게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는 칭찬에 부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항상 일찍 출근하고, 어렵고 힘든 일에도 항상 예스를 외쳤으며, 영어를 못 알아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늘 내 눈과 귀는 쉴 새 없이 바빴습니다. 나에겐 하루하루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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