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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그림_ 우지현

by lucy831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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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온전히 마주하는 그림 한 점의 일상

 

시작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갑니다. 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강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더 많이 사랑받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며 하루하루를 견딥니다. 끝 간 데 없는 시련들 속에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절박하게 몸부림칩니다. 살다보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불행이 한꺼번에 휘몰아칠 때도 있고 때로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잊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슬픔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찾은 것이 그림입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고,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따듯해지는 가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림이 어떤 해답을 알려주거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질문할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지.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지. 우리는 그림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내면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은 내면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도달하기 힘든 지점까지 마음을 이끌고 심연의 낯선 곳까지 우리를 안내합니다.

 

조지 클라우센, <등불 옆에서의 독서>, 1909

책이 주는 달콤한 평온

그렇게 미친듯이 책에 빠져 지냈던 이유는 아마 세상에 대한 답을 책 속에서 구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복잡한 시간이었기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의 양은 줄이고 생각의 질은 높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내게 선물한 것은 세상에 대한 답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클라이브 루이스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했듯이, 독서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었고 타인의 역사를 존중하게 되는 훈련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만으로 따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온전한 이해란 진심어린 마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비극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책 읽는 장소로 서점만큼 좋아하는 곳이 집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이 내가 원하는 모든 책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다면, 집에서 하는 독서는 내가 원하는 책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어 좋습니다. 한낮에 창문을 열고 햇볕의 아늑함을 느끼며 독서하는 것을 즐기고 주말 아침,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의 소중한 낙입니다. 이런 기분을 잘 표현해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조지 클라우센의 <등불 옆에서의 독서> 입니다. 홀로 책을 읽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고요한 정경이 잔잔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장면입니다. 소파에 앉아 밤새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습니다. 하얀 커튼 사이로 스며든 코발트블루 색이 그윽하게 빛나고, 세상이 온통 푸른 빛깔로 물들어 있습니다. 턱을 괴고 오롯이 책에 집중한 여인의 독서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은은한 등불이 방 안의 온기를 가득 메웁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책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여인의 눈빛이 진중하고 진지합니다. 어떤 페이지는 가볍게 넘어가고 또 어떤 페이지는 아주 오랫동안 시선이 머뭅니다. 이따금 사각대는 책장 넘어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합니다. 그 고요가 깊고도 깊어 등불의 빛조차 움직이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기가 천천히 흐르고, 시간은 느리게 숨 쉽니다. 소리가 없어 마음이 더 선명한 시간입니다.

 

참 기특한 청춘

가진 것이라고는 눈빛밖에 없던 시절,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떠나는 날과 돌아오는 날, 정해진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듣고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로 떠난 것처럼, 아무 목적도 계획도 없이 떠난 한 달 간의 지중해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이유를 여행에서 돌아와서 알았습니다. 나만 힘든 것 같아 억울했고, 무엇도 명확하지 않아 초조했으며, 아무것도 없어서 계속 잡으려 했습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청춘을 낭비하고 있던 어느 날, 무엇에 이끌린 듯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청춘의 방황은 그 여름 내내 나를 방랑하게 만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청춘이었습니다. 청춘의 찬란한 순간을 기록한 토마스 듀잉의 그림은 가슴 깊이 간직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화폭에서 펼쳐지는 푸른 숲의 싱그러운 풍경이 젊음의 순수를 감응하게 하고 마음의 빛을 되살려줍니다. 그가 모호한 초록으로 표현했듯이 여행을 통해 흐릿하지만 푸른 청춘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천천히 걷는 법과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설레는 젊음 하나로 마음껏 방황할 수 있는 용기, 참 기특한 청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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